2019 2019. 11. 6. 19:53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 창비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젊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사서 읽었다. 원래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했는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예약이 꽉 차 있었다. 한 해에도 수 십명의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의 책이 이렇게 인기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그의 등단작이 트위터 등 SNS에서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의 등단작이자 이 책의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올해 초 쯤에 창비 홈페이지에서 읽었었고, 그 외 다른 7개의 작품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한 2시간만에 다 읽은 것 같고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실망스럽고 또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좋았던 부분도 있었다. 작품 별로 간략한 감상 내용을 적어본다.

 

1. 잘 살겠습니다 

소설집 제일 처음에 수록된 소설. 미리 말해두자면 장류진은 IT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꽤 오래했던 회사원 출신 30대 여성 소설가로 그의 소설에는 회사원들이 자주 나오며, 매우 디테일한 회사 생활, 사회 생활의 묘사로 2030 회사원 독자들의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이 소설 또한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여러가지 디테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답답한 어떤 언니에 대한 찝찝한 계산기 두들기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솔직히 네이트판이나 여초 커뮤니티의 유저들이 고민이라고 올릴법한 '썰'에 가까운 이야기지 이게 소설인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썰 나열'이었던 전개에 비해 결말도 너무 싱거웠고. 그런데 요즘 한국 소설 자체가 워낙 그런 트렌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울하고 무겁고 축축한 신경숙 식 소설은 가버리고, 정이현 장류진 류의 일상 소설들이 인기를 얻는. 물론 나는 정이현 작가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장류진의 소설은 ㅡ 이 소설집을 읽고난 후엔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2. 일의 기쁨과 슬픔

등단작이자 표제작. 읽으면서 재밌다는 생각을 했던. 

 

3.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작가의 경험담인가 싶다가도 또 결국 모든 소설들이 작가의 경험담인거 같은데 이 소설만큼은 굉장히 독특한 방향에서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장률의 영화 <경주>가 생각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결말은 8개 단편 중에 제일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4. 다소 낮음

어떤 밴드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소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좀 뻔하고 예상 가능하다. 새로울 것도 없고, 공영방송의 드라마 스페셜에서 꼭 이런 단막극 하나 정도는 들어가있다. 꿈만 좇아가는 베짱이 청춘의 몰락기라거나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꿀꿀하고 우울한 어른아이의 이야기. 유튜브 같은 거 나오는 건 재밌는데 전개 과정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할까. 어떤 장면을 위해 우다다다 달려가는 느낌.

 

5. 도움의 손길

음.. 소재 자체는 흥미로웠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앞서 언급했듯 네이트판이나 여초 커뮤니티의 '썰' 형식의 소설이 장류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움의 손길'도 그런 느낌이 매우매우 강했다. 실제로 내가 지금은 탈퇴했지만 한 때 몸담았던 여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이런 류의 글들과 고민들이 올라오곤 했었다. 작가의 실제 경험일 수도 있고. 이 소설에서도 역시 수많은 현실적인 디테일들과 설정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두 명의 인물의 갈등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A-B-A-B-A-... 로 이어져 나가는 전개라 좀 뻔한 느낌이 들었지만 요것도 결말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6.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요거는 사실 소설이라기엔... 그냥 아주 간단한 쇼트 스토리 정도... 등단한 작가가 힘줘서 쓴 글이라기보단, 글 좀 재미있게 쓰는 브런치 작가가 인터넷에 심심풀이로 올릴 법한 그런 글로 느껴졌다. 근데 1번 단편도 그렇고 이 작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동기에 비해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대해 어떤 경험과 생각들을 해본 사람 같다. 그게 자주 반복되면 좀 질리고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7. 새벽의 방문자들

이건 아마 동명의 테마소설집에 수록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관심을 가지고 찾아 읽어볼까 하다가 안 읽었었는데, 이번에 읽게 됐다. 요것도 사실 그렇게 재밌진 않았다. 흥미로운 디테일들과 공감할 만한 설정들이 있긴 한데... 그냥 그걸 재치있게 써먹는 건 알겠는데 더 나아가지는 않는 느낌. 이것 또한 당연스럽게도 여초 커뮤니티에 올라올 법한 '썰' 류의 소설이다.

 

8. 탐페레 공항

뜻밖에도, 정말 뻔하고 뻔한 설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막판엔 눈물까지 찔끔 흘렸던 소설이다. 다시 읽으면서는 덤덤했지만... 약간 <쇼코의 미소>와 비슷하고 혹시 그것에 영향을 받은건가 싶기도 하고. 결말이 좋긴 했지만 좀 초보스럽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막스에서 등장하는 특정 대사와 설정이 참 좋았다. 다른 소설들과는 결이 많이 다른, 작가의 새로운 색깔을 볼 수 있던 단편. 

 

장강명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작가가 참 영리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장류진도 비슷한 류의 작가 같다(우연히도 둘다 '장'씨이며 같은 대학을 졸업했다). 영리하고 시류를 잘 타는.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될 것 같진 않지만(그의 등단작을 봤을 땐 그의 팬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젊은 여성들이 가볍게 읽기 좋은 괜찮은 소설들을 잘 써주길 기대해본다.

 

 

2019 2019. 8. 15. 11:55

<어젯밤> 제임스 설터 / 마음산책

현대 미국 단편소설집을 읽어나가는 중 자연스레 제임스 설터를 접하게 되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카버나 라히리만큼의 감흥을 주진 못했다. 그치만 그것은 내 취향일 뿐이고, 소설 자체로만 놓고본다면 분명 놀라운 매력과 역능을 가진 소설임에 틀림없었다. 툭툭 내던지듯 끊어지는 예리한 문장들, 불친절하리만큼 감정이 절제된 묘사와 대사들, 남자와 여자와 섹스와 연애와 결혼에 대한 거침없는 트위스트까지. 모든 문장을 감탄하며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고나면 뭔가 아-하게 되는 단편소설들이었다.

 

먼저 <뉴욕의 밤>이 기억에 남는다. 남성 화자가 중심인 다른 이야기들보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라서 그랬을까. <포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는데 그 마지막의 흐름이 신선하고 독특했다. <귀고리>는 흔하디 흔한 구질구질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가장 몰입하면서 읽었던 이야기였다. <플라자 호텔>과 <방콕>은 다른 내용이면서도 공통지점이 있었는데 그 짧은 찰나동안 발생한 사건이 과거 회상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툭 끊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표제작이기도 한 <어젯밤>은 기대보다는 그저 그랬지만, 그래도 앞선 이야기들 이상으로 예민하면서 단단한 파워를 지닌 이야기였다. 

 

이야기들만큼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의 말에 적힌 내용들이었다. 단편소설의 소재를 구하는 방법이나 단편소설을 써나가는 방식에 대한 설터의 솔직하면서 담백한 문장이 몇개 적혀있는데, 분명 매우 소탈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가장 놀라운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가벼운 나날들>을 언젠간 꼭 읽어야겠다. 

2019 2019. 8. 6. 17:09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엄청난 소설을 읽었다. 인도계 미국인 작가인 줌파 라히리의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이다. '축복받은 집'을 포함해 9개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줌파 라히리는 이 소설집으로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이름이 낯설었지만 '카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에 그녀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책 첫 페이지에 적힌 문구 때문이었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이미 삶에 대한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을 말이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머리를 쿵 하고 얻어맞은 듯한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굉장히 평범하고 무난하며, 흔하고 가벼운 에세이집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문장인데도 분명 그 문장이 단독으로 놓여있을 때 주는 감흥이 있었다. 어쩌면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이미 삶에 대한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으로서 나 스스로가 감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문장은 이 소설집의 원서 제목이자 수록된 단편소설 중 한편의 제목인 '질병 통역사'에서 등장한다. 내가 상상하던 '그녀'는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 그 문장을 그 단편소설에서 발견하며 신기하고 반가웠다.

 

단편 하나하나를 짚어보자. '일시적인 문제'는 단전이 되어버린 며칠 동안 어둠 속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잔잔하지만 긴장을 유지하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서 무언가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으로 침잠해가는데, 모든 것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뒤 무너뜨리는 그 잔잔하면서도 폭력적인 전개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는 한편의 시를 읽는 듯한 섬세하면서도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누구나 느꼈을법한, 그러나 기억 깊이 자리잡고 있어 쉽게 떠올리기는 힘든... "그러나 나는 축하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를 못 본지 몇 달이나 되었지만 그제야 피르자다 씨의 부재를 느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물 잔을 치켜들며, 그제야 비로소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가 여러 달 동안 아내와 딸을 그리워했듯이. 그는 우리에게 돌아올 이유가 없었고, 부모님이 바르게 예측한 것처럼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할 것이었다. (...) 그날 밤에는 사탕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것들을 모두 버렸다."

 

'질병 통역사'는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흥미진진하면서도 아주 매혹적인, 그러나 결국엔 깊은 감탄을 내지르게 되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느낄 법한 일상의 이탈적인 순간들, 몇 시간만에라도 '생각'으로는 무엇이든 넘나드는 순간들, 그리고 맥없이 탁 풀리는 아주 허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들. "카파시 씨 역시 그 광경을 지켜보았는데, 이것이 자신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할 다스 가족의 사진임을 알았다."

 

'진짜 경비원'과 '센 아주머니의 집'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들이었다. '진짜 경비원'의 부리 마와 '센 아주머니의 집'의 센 아주머니,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제3자로서의 사람들. 후술할 '비비 할다르의 치료'도 그렇지만 줌파 라히리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여인들의 고군분투가 눈물겹고 애틋하다.

 

'섹시'의 경우엔,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에서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다. 물론 '질병 통역사'에서 나이든 남자의 은밀한 상상을 치밀하게 묘사했던 작가지만, 유부남과 불륜 상태에 있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이렇게 특별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기승전결 자체는 평범한 것이지만, 마치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의 맹인과의 대화처럼, '섹시'의 미랜더와 로힌의 대화는 엄청난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평범하지만 깊은 밀도를 가진 것, 줌파 라히리 소설의 매력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이 소설의 에필로그와 같은 마지막 부분은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드넓게 펼쳐진 새파란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는 미랜더.

 

'축복받은 집'은 생각과는 많이 다른 느낌의 소설이었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 혹은 가족이라는 것. 서로 다른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로서 흥미로웠다.

 

'비비 할다르의 치료'는 그에 반한다면 뭔가 마술적이면서, 초현실주의적이고, 무척 마음이 아팠다. 자세한 이야기를 적는 것이 이 소설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머뭇거리게 되지만, 하여튼 이 세상 모든 비비 할다르의 삶에 평온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싶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은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매우 적절한 단편이었다. 앞선 모든 소설들을 정리하면서 또 새로운 출발과 시작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그런 이야기. 결국 우리가 감동을 느끼는 모든 소설과 이야기들은 그 무수한 시간의 틈을 지나 살아남아온 것들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100살이 넘은 할머니나, 세 개의 대륙을 건너오며 살아남은 주인공이나, 그 시간들을 견뎌온 모든 이들의 삶이 아름답고 특별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한 편 한 편을 읽으며 서로 다른 이야기와 주인공과 상황과 배경과 시간 속에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가 다시 그것을 토닥토닥했다가 짧게 웃었다가 뭉클해졌다가 서늘해졌다가 했다. 나는 줌파 라히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녀의 글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19 2019. 8. 1. 19:21

<성모> 아키요시 리카코 / 한스미디어

<절대정의>의 작가 아키요시 리카코의 미스터리 소설 <성모>다. 서술 트릭이 호불호가 갈린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직 많은 미스터리 소설을 읽지 않은(그러니까 그만큼 까다롭지 않은) 나로서는 '호'였다. <절대정의>와 마찬가지로 문체가 가볍고 소재나 묘사들이 세속적이어서 술술 읽히는 편이고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소설은 세 파트의 시점으로 돌아가면서 전개가 되는데, 어렵게 딸을 낳은 40대 여성 호나미, 아동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두명, 그리고 아동 살인사건의 범인인 고등학생 마코토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에 마코토가 범인인 아동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두 명의 형사가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 호나미가 고군분투하는 그런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반전이 밝혀지기 이전의 내용도 흥미로운데 반전이 밝혀진 이후도 흥미롭다. 찾아보니 이런 서술트릭 자체는 <살육에 이르는 병>,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같은 매우 유명한 소설들에서 숱하게 사용되어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후기를 찾다보면 신선한 트릭은 아니라는 평을 볼 수 있는데, 서술트릭의 신선함이나 참신함을 떠나서 그 서술트릭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 책의 전반적인 컨셉과 내용을 떠올려 볼때,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인 '성모'와 모든 반전이 밝혀지고 난 후 어머니와 딸의 포옹까지. 

 

<절대정의>의 경우엔 드라마화 되었지만 아마 <성모>는 영화나 드라마화되기엔 무리인 부분이 있어서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뜻은 결국 이 소설 자체가 정말 오로지 '소설'이라는 매체에서만 즐길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절대정의>와 같은 소설들은 그것이 시나리오로 각색되어 영상매체로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성모>와 같은 소설들은 정말 소설, 문자매체로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여튼 아키요시 리카코의 다른 소설들이 기대된다. 

2019 2019. 7. 31. 19:57

<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 아프로스미디어

5명의 여고 동창생을 중심으로 한 스릴러 소설이다. 일본 스릴러 소설답게 가볍게,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붉은 표지에 단발 머리의 여자가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학연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 사이에 엮인 살인 스릴러는 언제나 비슷한 내용으로 전개가 되는데, 이를테면 꼭 한명 정도는 돈이나 가정 문제를 겪고 있고, 돈 걱정이 없는 여자는 불임이라거나, 서로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 등이 등장한다는 것이 그렇다. 

 

<절대정의>의 경우엔 4명의 친구들과 노리코가 대립적인 관계로 등장하는데,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의'에 집착해온 노리코가 4명의 친구와 엮이면서 '죽이고 싶을만큼' 관계가 악화된다. 노리코라는 인물의 독특함을 떠나서, 어떻게 그렇게 직업도 상황도 배경도 다른 친구들과 가지각색으로 사이가 나빠지고 그들을 괴롭히는지... 소설을 보는 내내 노리코보다 4명의 친구에게 더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소설의 반전 이후 에필로그를 읽으면서도 알 수 있지만, 결국 '정의'라는 명목하에 타인에게 심판을 내리고 타인의 인생을 쥐고 흔들고 싶어하는 현세태를 비판적으로, 장르적으로 그려낸 소설인 것 같다. 일상을 살다보면 언제나 타인의 말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 '익명의 군중'이라는 미명하에 이름이 드러난 소수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대중 행동이나 집단 지성으로 잘잘못을 가리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되는 일을 하는 것은 의미있겠지만, 그것이 너무 과열될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최악으로까지 치닫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에 쉽게 읽을만한 소설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오늘날 사회와 연결지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은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2019 2019. 7. 23. 15:31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 문학동네

단편 소설집들을 읽고 있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 체홉의 단편집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검색해보니 미국의 체홉이라고 불린 사람이 카버라고 했다. 카버의 <대성당>의 경우엔 몇 년전 팟캐스트나 언론 등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서 작가와 소설의 이름은 알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대성당'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느낌이 그렇게 썩 좋진 않아서 막연히 지루하고 뻔한 그저 그런 소설이겠거니, 하고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근데 그 선택을 후회한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봤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아직 많은 단편 소설들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읽은 거의 모든 한국 현대 단편 소설들을 합친 것 이상의 감동과 감흥과 정념을 주었다. 

 

<대성당>의 이야기들은 아주 지극히 서민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그들의 일상의 파편들을 그려낸다. 어디론가 떠나가는 몇 시간의 이야기라거나, 누군가 찾아왔다가 홀연히 떠나가는 이야기라거나, 부부 간의 며칠을 다룬 이야기라거나. 스펙타클한 설정도, 화려한 반전도, 흥미로운 인물 관계도 없다. 이름만 이국적일 뿐, 그 이름을 김철수와 이영희로 바꾼다면 당장 한국에라도 적용이 될만한 정서들이고 마음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카버의 미덕은 그 정서들을 결코 무겁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겁거나 질척거리거나 끈적거리지 않는데, 모든 것이 오롯이 전달되며 무궁무진하게 독자의 자유로 남겨진다. 그의 소설들은 '무미건조한' 시작으로 출발해서, '몰입할 수밖에 없는' 중간을 지나, '너무나 미련없는 견고한' 결말로 끝나는데, 시작과 중간도 좋지만 그의 소설들의 아름다움은 그가 자신이 시작한 이야기를 어디서 끝낼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사연을 더하지도 않고, 감정을 북돋기 위해 쓸데없는 수사들을 포함시키지도 않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신파적인 묘사 없이도 아이를 잃은 부모와 그를 위로하는 제과점 주인의 마음이 느껴지며, <열>에서 단지 아이들의 보모를 두 번 바꾸는 과정을 통해 떠나간 아내를 진짜 떠내보낼 수 있게 된 남자의 고요한 결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깃털들>이나 <칸막이 객실>, <기차> 등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서스펜스도 훌륭하다. <보존>과 <신경써서>의 막막함도 좋다. 표제작인 <대성당>의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다. 앞의 모든 단편들의 정수를 모아놓은 아름다운 소설이면서, 또 동시에 전혀 다른 문장들로 이루어진 것만 같은 새로운 소설이다. 많이 언급되는 단편은 아니지만 <굴레>의 수영장을 떠올리며 많이 마음도 아팠다. <굴레>의 마지막 부분에 남자가 남기고 간 '말 굴레'를 보며 화자가 하는 말은 다른 소설보다 직접적인 느낌을 풍기는데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번역을 맡은 김연수 소설가의 자의식 때문인지 중간중간 김연수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색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김연수의 해설에 실린 '충만함'이라는 단어가 내가 이 책의 이야기들을 통해 느낀 것들을 한 단어로 압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근래에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지금 현재 아무리 생생하고 눈부시게 살아있는 존재들이어도 딱 100년만 지나도 그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그들의 자리를 다른 생생함들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 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지금은 너무 아프고 슬프고 괴롭지만, 결국 모든 것이 소멸되어가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의 틈새에서 스쳐가는 것들을 소중하게 바라보고, 순간의 충만함을 발견하는 것. 결국 '끝'이 무엇이냐보다는, 그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고 받아들이는 것. <대성당>을 읽으면서, 이 느낌들을 다시 감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19 2019. 7. 21. 20:12

<엄마의 독서> 정아은 / 한겨레출판사

소설가인 저자가 두 아들을 키우며 '엄마'로서 겪은 일들을 '책'과 엮어낸 책이다. 기실 '책에 대한 책'을 볼땐 1) 저자에 대한 엄청난 믿음 2) 베스트셀러 둘 중 하나가 해당되어야 볼 마음이 나는데, 이 책은 둘 다 아니었지만 추천을 받아 읽게됐다. 소설가다보니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나 상황 설명 등이 술술 읽힌다. '00이 육아일기'나 '00맘의 고군분투 육아기' 같은 글이 아니라, 대학생과 직장인을 지나 '엄마'가 된 저자가 그 과정에서 겪은 힘듦을 책을 통해 정답을 얻거나 이겨내고자 했던 기록이다. 그러므로 편한 마음으로 쉽게 읽기에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때론 불편하기도 하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로선 이 책을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니며, 앞으로 몇 년간은 절대 '엄마'가 될 일도 없는 나에게 제목부터 '엄마'를 강조하는 이 책을 부담감이나 어색함이나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던 것은 저자가 '엄마'라는 것에 대해 신격화하거나 옹호하거나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도와주면서도 '도와주기'만 하는 남편에 대한 허심탄회한 불만과 두 아들과의 불편함과 아들 친구들 엄마들끼리 겪는 미묘한 어색함, 공부와 인성 어떤 욕심도 놓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고민 등등이 잘 녹아들어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시작하자마자 "왜 역사 속 유명한 여자들은 대부분 창녀였으며, 반대로 창남은 없는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두 아들의 엄마로서 던지기 쉽지 않은 질문, 이 책은 과격하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모든 것을 뒤엎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지만,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스스로의 세속적인 면과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면서 엄마로서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부단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저자의 '엄격했던 엄마'에 대한 짧은 소회들이었다. 40대 시절에 남편을 잃고 혼자서 가계를 일궈나가며 두 딸을 키워야했던, 지금은 70대의 농부 할머니가 된 저자의 어머니. 그에 대해 엄마가 된 저자가 느끼는 새로운 기분과 감정과 이해들이 솔직하게 적혀있다. '엄마가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엄마랑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는 에필로그 또한 내가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이라 많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