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 창비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젊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사서 읽었다. 원래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했는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예약이 꽉 차 있었다. 한 해에도 수 십명의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의 책이 이렇게 인기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그의 등단작이 트위터 등 SNS에서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의 등단작이자 이 책의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올해 초 쯤에 창비 홈페이지에서 읽었었고, 그 외 다른 7개의 작품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한 2시간만에 다 읽은 것 같고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실망스럽고 또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좋았던 부분도 있었다. 작품 별로 간략한 감상 내용을 적어본다.
1. 잘 살겠습니다
소설집 제일 처음에 수록된 소설. 미리 말해두자면 장류진은 IT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꽤 오래했던 회사원 출신 30대 여성 소설가로 그의 소설에는 회사원들이 자주 나오며, 매우 디테일한 회사 생활, 사회 생활의 묘사로 2030 회사원 독자들의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이 소설 또한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여러가지 디테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답답한 어떤 언니에 대한 찝찝한 계산기 두들기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솔직히 네이트판이나 여초 커뮤니티의 유저들이 고민이라고 올릴법한 '썰'에 가까운 이야기지 이게 소설인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썰 나열'이었던 전개에 비해 결말도 너무 싱거웠고. 그런데 요즘 한국 소설 자체가 워낙 그런 트렌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울하고 무겁고 축축한 신경숙 식 소설은 가버리고, 정이현 장류진 류의 일상 소설들이 인기를 얻는. 물론 나는 정이현 작가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장류진의 소설은 ㅡ 이 소설집을 읽고난 후엔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2. 일의 기쁨과 슬픔
등단작이자 표제작. 읽으면서 재밌다는 생각을 했던.
3.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작가의 경험담인가 싶다가도 또 결국 모든 소설들이 작가의 경험담인거 같은데 이 소설만큼은 굉장히 독특한 방향에서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장률의 영화 <경주>가 생각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결말은 8개 단편 중에 제일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4. 다소 낮음
어떤 밴드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소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좀 뻔하고 예상 가능하다. 새로울 것도 없고, 공영방송의 드라마 스페셜에서 꼭 이런 단막극 하나 정도는 들어가있다. 꿈만 좇아가는 베짱이 청춘의 몰락기라거나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꿀꿀하고 우울한 어른아이의 이야기. 유튜브 같은 거 나오는 건 재밌는데 전개 과정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할까. 어떤 장면을 위해 우다다다 달려가는 느낌.
5. 도움의 손길
음.. 소재 자체는 흥미로웠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앞서 언급했듯 네이트판이나 여초 커뮤니티의 '썰' 형식의 소설이 장류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움의 손길'도 그런 느낌이 매우매우 강했다. 실제로 내가 지금은 탈퇴했지만 한 때 몸담았던 여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이런 류의 글들과 고민들이 올라오곤 했었다. 작가의 실제 경험일 수도 있고. 이 소설에서도 역시 수많은 현실적인 디테일들과 설정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두 명의 인물의 갈등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A-B-A-B-A-... 로 이어져 나가는 전개라 좀 뻔한 느낌이 들었지만 요것도 결말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6.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요거는 사실 소설이라기엔... 그냥 아주 간단한 쇼트 스토리 정도... 등단한 작가가 힘줘서 쓴 글이라기보단, 글 좀 재미있게 쓰는 브런치 작가가 인터넷에 심심풀이로 올릴 법한 그런 글로 느껴졌다. 근데 1번 단편도 그렇고 이 작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동기에 비해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대해 어떤 경험과 생각들을 해본 사람 같다. 그게 자주 반복되면 좀 질리고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7. 새벽의 방문자들
이건 아마 동명의 테마소설집에 수록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관심을 가지고 찾아 읽어볼까 하다가 안 읽었었는데, 이번에 읽게 됐다. 요것도 사실 그렇게 재밌진 않았다. 흥미로운 디테일들과 공감할 만한 설정들이 있긴 한데... 그냥 그걸 재치있게 써먹는 건 알겠는데 더 나아가지는 않는 느낌. 이것 또한 당연스럽게도 여초 커뮤니티에 올라올 법한 '썰' 류의 소설이다.
8. 탐페레 공항
뜻밖에도, 정말 뻔하고 뻔한 설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막판엔 눈물까지 찔끔 흘렸던 소설이다. 다시 읽으면서는 덤덤했지만... 약간 <쇼코의 미소>와 비슷하고 혹시 그것에 영향을 받은건가 싶기도 하고. 결말이 좋긴 했지만 좀 초보스럽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막스에서 등장하는 특정 대사와 설정이 참 좋았다. 다른 소설들과는 결이 많이 다른, 작가의 새로운 색깔을 볼 수 있던 단편.
장강명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작가가 참 영리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장류진도 비슷한 류의 작가 같다(우연히도 둘다 '장'씨이며 같은 대학을 졸업했다). 영리하고 시류를 잘 타는.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될 것 같진 않지만(그의 등단작을 봤을 땐 그의 팬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젊은 여성들이 가볍게 읽기 좋은 괜찮은 소설들을 잘 써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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